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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이와 노는 것이 최고의 리더십 훈련
작년 연말 건강검진을 마치고 의사와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의사는 내게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느냐”고 물었다. 이럴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무척 많다”고 답하자, “그중 윗사람이 주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냐”고 재차 물었다. 프리랜서라서 윗사람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는 “혹시 감당하기 힘든 빚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것도 아니라고 대답하자, 의사는 “그럼 스트레스가 건강에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기심에 그 두 가지는 왜 특별한지 물어보았다. 의사는 나쁜 직장 상사와 큰 빚은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스트레스인데,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잘 보이지 않고, 그래서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폭군 같은 아버지, 지나치게 근엄한 아버지, 대화 없이 명령만 하는 아버지, 자신의 원칙만 옳다고 고집하는 아버지. 이런 아버지들은 나쁜 아버지다.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나쁜 상사와 다를 바 없다. 아이의 힘으로는 상황을 개선하거나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아버지도 가정에서 겉돌 수 있다
나쁜 아버지의 반대편에는 좋은 아버지가 있다. 돈 많이 벌어다 주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아버지 말이다. 좋은 아버지들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고민을 풀어주고, 아버지의 지혜를 주고 싶어한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아버지들은 많다. 하지만 세상이 아버지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경쟁은 치열함을 지나 혹독함을 넘어 살벌한 상황에 접어들었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경쟁에서 뒤처지고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늦게까지 일을 하고 술자리에도 참석한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늘 심사가 불편하다.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계발할 시간도 필요하고 휴식을 통해 재충전도 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모처럼 주말에 아이와 함께 있어도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내기 일쑤다. 차라리 아이를 피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아이와 접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대하는 일은 아주 잘 짜인 자기계발 프로그램 같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인내심이 늘고 자기 절제력이 생겼다. 많이 온화해지면서 버럭 화를 내는 일이 없어졌다.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발전했다. 달리 노력한 기억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모르게 바뀐 것이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려면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경쟁력은 리더십에서 나온다. 아이를 대하는 것은 존경받는 리더로서의 품성과 기술을 익히는 리더십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즐겁게 그리고 공짜로 할 수 있다.
나쁜 아버지는 나쁜 상사와 닮았다
왜 아이를 대하는 것이 리더십 훈련 과정일까. 가정과 회사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대하는 것과 부하직원을 리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은 일이다. 아이를 능숙하게 대하는 아버지가 회사생활도 사회생활도 잘할 수 있다.
나는 직장생활 경험이 4년밖에 되지 않지만 지긋지긋할 정도로 이상한 상사, 황당한 상사, 나쁜 상사를 만났다. 나쁜 상사는 나쁜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을 대하는 습관이나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나쁜 상사나 나쁜 아버지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
◈ 칭찬할 때 꼭 토를 단다
나는 회사 일을 잘하지 못했지만 가끔은 잘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쁜 상사는 이런 말을 했다.
“잘했어. 근데 말야, 진작부터 잘할 것이지.”
칭찬은 조건 없이 해야 한다. 칭찬에 토를 달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아이가 영어 90점 받았다며 성적표를 보여줄 때, 나쁜 아버지는 칭찬에 토를 단다.
“영어는 잘했네. 그런데 수학은 왜 이 모양이냐?”
칭찬을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잘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다음에도 잘할 거지?”도 불필요한 말이다. 아이에게 중압감만 준다.
◈ 직접 야단치지 않고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신입사원 시절 실수를 할 때마다 과장은 내가 아니라 대리를 불러 야단을 쳤다. “쟤는 왜 저 모양이냐?” 식으로. 과장과는 불과 2m 거리였다. 그런 거리에서 큰소리로 말하면 못들을 리 없다. 반성하기는커녕, 모욕감에 화만 치밀어 올랐다.
아이의 성적표를 보고 화가 났다. 나쁜 아버지는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엄마에게 고함을 친다.
“도대체 쟤는 공부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공부하기 싫으면 학원 때려치우라고 해. 학원비 벌어오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 사람의 말을 대놓고 무시한다
과장이 나를 싫어하기에 친해지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적이 있다. 과장은 주식투자에 열심이었다. 증권시세를 보고 있기에 다가가서 말했다.
“주가 많이 올랐던데요. 기쁘시겠어요.”
과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눈길을 돌렸다. 민망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나쁜 아버지도 이런 행동을 한다. 아이가 “아버지, 주말에 같이 축구하면 안돼?”라고 물을 때 잠시 아이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린다. 좋은 상사와 좋은 아버지는 부하와 아이의 말에 일단 반응을 하는 사람이다. 어떤 반응이든 무시보다 낫다.
◈ 다그치듯이 많이 묻는다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거래처에 다녀왔는데 나쁜 상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됐어? 잘됐어? 상대가 뭐라고 해?”
혹은 이런 말도 한다.
“어디 갔다 왔어? 뭐하다 온 거야?”
좋은 상사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더운데 수고 많았네. 시원하게 찬물 한 잔 마시게.”
경시대회는 대개 일요일에 시험을 치른다. 시험장에 오는 아버지들도 많다. 시험을 치르고 나온 아이에게 나쁜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한다.
“잘 봤어? 몇 개 못 풀었어? 한 문제 틀리는 데 몇 대 맞는지 알고 있지?”
이건 아버지가 아니라 惡鬼(악귀)다. 좋은 아버지는 어깨를 토닥거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고생 많았지. 수고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존재다
아이는 자라면서 수많은 어른을 만난다. 부모, 교사, 친척, 동네 사람들. 나는 그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지시하고(하라면 해. 이유는 몰라도 돼), 경고하고 협박하고(안 하면 혼날 줄 알아), 훈계하고 설교하고(사람은 모름지기 이래야 해), 비난하고 비판하고(한심한 놈. 못쓸 놈), 무시하고(어린 것이 뭘 안다고), 피의자처럼 심문하고(왜 그랬어. 빨리 이유를 말해), 욕설을 하고 비웃고(네가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말을 회피하고(그냥 밥이나 먹어라)….
어린 시절 나는 깨나 모범생이었는데도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이런 것이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보편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욕먹으면서 배운다고 성인이 되면 이런 식으로 아랫사람을 대하기 일쑤다. 아이에게도 부하직원에게도.
나는 내 아이에게 이런 말투를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아이도 자신만의 생각과 개성이 있다. 아이는 기본적으로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아이를 대하는 것은 그 어떤 부하직원보다 힘든 상대를 마주하는 일이다. 아이는 그 어떤 거지발싸개 같은 부하직원보다도 화나게 만들고 머리를 아프게 한다. 아무리 거지 같은 직원도 잘리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며 자기 방어를 한다. 아이에게는 그런 동기가 없다.
이런 아이에게 소리 지르지 않고 때리지 않고 부드러운 말로 의사를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버지는 그 어떤 사람하고도 잘 지낼 수 있고, 그 어떤 부하직원도 잘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이를 대하는 일은 아버지에게 인간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성공의 기회도 제공해 준다.
좋은 아버지, 좋은 상사가 되는 비결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매 순간 올바른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좋은 아버지가 갖추어야 할 것은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자신의 상사가 내게 이렇게 대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아이에게 해줘 보자. 이런 태도를 지니면 아이와의 관계가 극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저절로 좋은 상사의 자질을 갖추어 가게 된다. 나는 다음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첫 번째는 주어를 ‘너’가 아니라 ‘나’로 한다. ‘나-전달법’이라는 것이다. 어른들의 강요나 지시, 비난, 심문, 무시 등은 모두 주어가 ‘너’라는 공통점이 있다. ‘너는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이다. 주어를 나로 바꾸면 상대의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부드러운 말로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
아버지의 독서를 방해하는 아이에게 “너 아버지 화 돋울래?”가 아니라 ‘네가 그런 일을 하면 아버지인 나는 화가 난다’고 말하는 것이 ‘나-전달법’이다. 이런 화법은 회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지각을 한 부하에게 “자네는 생각이 있나 없나?”라고 하는 것보다 “자네 때문에 내가 지금 무척 화가 나네”라고 하는 것이 좋은 말이다.
두 번째는 명령 대신 선택권을 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신입사원 시절, 회식을 마치고 노래방에 가는 것이 고역이었다. 상사가 “야, 노래 한 곡 뽑아 봐”라고 강요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집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딸아이가 새로운 노래를 익혔다고 말할 때, 나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그래, 그 노래 좀 불러 봐.”
아이가 새로운 것을 하나씩 익혀 가는 것은 아버지에게 큰 기쁨을 준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노래해 봐라’ ‘춤춰 봐라’, ‘글씨 써 봐라’라며 명령조의 말을 했다. 아이에게 결정권을 주는 말투를 사용하면 명령하지 않고도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새로운 노래 배웠다며? 아버지도 듣고 싶네. 네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새로운 춤을 배웠다며? 얼마나 잘 추는지 아버지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니?”
이런 말투는 아이의 자율성을 살려 주는 말이다. 혹시 아이가 거부하더라도 삐치지 말기 바란다. 아이도 노래하고 싶지 않을 때, 춤추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세 번째는 상대의 말을 논리가 아니라 감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의 본심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본심을 숨길 때가 많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자존심 때문에 마음을 숨기기도 하고, 야단을 맞을까 봐 돌려서 말하기도 한다. 아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의사소통에 장애가 올 수 있다.
아이가 “왜 공부를 잘해야 돼?”라고 묻는 말에 “그래야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장 들어가고” 같은 말은 논리적인 대답이다. 아이의 본심을 이해했다면 “요즘 공부하는 게 많이 힘들구나. 어떤 점이 가장 힘드니”라며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남자들은 감성적이기보다는 논리적이다. 그래서 “공부가 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에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 식으로 답하기 일쑤다. 리더가 되려면 감성회로를 발달시켜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마음을 읽기 위해 감성회로를 작동시키다 보면 사회 생활에 필요한 의사소통의 기술을 저절로 익히게 될 것이다.
서른 즈음에는 나이를 먹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젊음을 잃는 대신 그 대가로 얻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뒤로는 나이 드는 것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나이가 드는 만큼 인간적인 성숙이 쌓여 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는 것이 서글프고 억울했던 것은 그만큼의 성숙함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은 나이는 들어가는데 그만큼 성숙해지지 않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작년 연말 건강검진을 마치고 의사와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의사는 내게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느냐”고 물었다. 이럴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무척 많다”고 답하자, “그중 윗사람이 주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냐”고 재차 물었다. 프리랜서라서 윗사람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는 “혹시 감당하기 힘든 빚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것도 아니라고 대답하자, 의사는 “그럼 스트레스가 건강에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기심에 그 두 가지는 왜 특별한지 물어보았다. 의사는 나쁜 직장 상사와 큰 빚은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스트레스인데,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잘 보이지 않고, 그래서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폭군 같은 아버지, 지나치게 근엄한 아버지, 대화 없이 명령만 하는 아버지, 자신의 원칙만 옳다고 고집하는 아버지. 이런 아버지들은 나쁜 아버지다.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나쁜 상사와 다를 바 없다. 아이의 힘으로는 상황을 개선하거나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아버지도 가정에서 겉돌 수 있다
나쁜 아버지의 반대편에는 좋은 아버지가 있다. 돈 많이 벌어다 주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아버지 말이다. 좋은 아버지들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고민을 풀어주고, 아버지의 지혜를 주고 싶어한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아버지들은 많다. 하지만 세상이 아버지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경쟁은 치열함을 지나 혹독함을 넘어 살벌한 상황에 접어들었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경쟁에서 뒤처지고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늦게까지 일을 하고 술자리에도 참석한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늘 심사가 불편하다.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계발할 시간도 필요하고 휴식을 통해 재충전도 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모처럼 주말에 아이와 함께 있어도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내기 일쑤다. 차라리 아이를 피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아이와 접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대하는 일은 아주 잘 짜인 자기계발 프로그램 같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인내심이 늘고 자기 절제력이 생겼다. 많이 온화해지면서 버럭 화를 내는 일이 없어졌다.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발전했다. 달리 노력한 기억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모르게 바뀐 것이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려면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경쟁력은 리더십에서 나온다. 아이를 대하는 것은 존경받는 리더로서의 품성과 기술을 익히는 리더십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즐겁게 그리고 공짜로 할 수 있다.
나쁜 아버지는 나쁜 상사와 닮았다
왜 아이를 대하는 것이 리더십 훈련 과정일까. 가정과 회사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대하는 것과 부하직원을 리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은 일이다. 아이를 능숙하게 대하는 아버지가 회사생활도 사회생활도 잘할 수 있다.
나는 직장생활 경험이 4년밖에 되지 않지만 지긋지긋할 정도로 이상한 상사, 황당한 상사, 나쁜 상사를 만났다. 나쁜 상사는 나쁜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을 대하는 습관이나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나쁜 상사나 나쁜 아버지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
◈ 칭찬할 때 꼭 토를 단다
나는 회사 일을 잘하지 못했지만 가끔은 잘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쁜 상사는 이런 말을 했다.
“잘했어. 근데 말야, 진작부터 잘할 것이지.”
칭찬은 조건 없이 해야 한다. 칭찬에 토를 달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아이가 영어 90점 받았다며 성적표를 보여줄 때, 나쁜 아버지는 칭찬에 토를 단다.
“영어는 잘했네. 그런데 수학은 왜 이 모양이냐?”
칭찬을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잘한 부분만 집중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다음에도 잘할 거지?”도 불필요한 말이다. 아이에게 중압감만 준다.
◈ 직접 야단치지 않고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신입사원 시절 실수를 할 때마다 과장은 내가 아니라 대리를 불러 야단을 쳤다. “쟤는 왜 저 모양이냐?” 식으로. 과장과는 불과 2m 거리였다. 그런 거리에서 큰소리로 말하면 못들을 리 없다. 반성하기는커녕, 모욕감에 화만 치밀어 올랐다.
아이의 성적표를 보고 화가 났다. 나쁜 아버지는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엄마에게 고함을 친다.
“도대체 쟤는 공부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공부하기 싫으면 학원 때려치우라고 해. 학원비 벌어오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 사람의 말을 대놓고 무시한다
과장이 나를 싫어하기에 친해지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적이 있다. 과장은 주식투자에 열심이었다. 증권시세를 보고 있기에 다가가서 말했다.
“주가 많이 올랐던데요. 기쁘시겠어요.”
과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눈길을 돌렸다. 민망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나쁜 아버지도 이런 행동을 한다. 아이가 “아버지, 주말에 같이 축구하면 안돼?”라고 물을 때 잠시 아이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린다. 좋은 상사와 좋은 아버지는 부하와 아이의 말에 일단 반응을 하는 사람이다. 어떤 반응이든 무시보다 낫다.
◈ 다그치듯이 많이 묻는다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거래처에 다녀왔는데 나쁜 상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됐어? 잘됐어? 상대가 뭐라고 해?”
혹은 이런 말도 한다.
“어디 갔다 왔어? 뭐하다 온 거야?”
좋은 상사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더운데 수고 많았네. 시원하게 찬물 한 잔 마시게.”
경시대회는 대개 일요일에 시험을 치른다. 시험장에 오는 아버지들도 많다. 시험을 치르고 나온 아이에게 나쁜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한다.
“잘 봤어? 몇 개 못 풀었어? 한 문제 틀리는 데 몇 대 맞는지 알고 있지?”
이건 아버지가 아니라 惡鬼(악귀)다. 좋은 아버지는 어깨를 토닥거려주며 이렇게 말한다.
“고생 많았지. 수고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존재다
아이는 자라면서 수많은 어른을 만난다. 부모, 교사, 친척, 동네 사람들. 나는 그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지시하고(하라면 해. 이유는 몰라도 돼), 경고하고 협박하고(안 하면 혼날 줄 알아), 훈계하고 설교하고(사람은 모름지기 이래야 해), 비난하고 비판하고(한심한 놈. 못쓸 놈), 무시하고(어린 것이 뭘 안다고), 피의자처럼 심문하고(왜 그랬어. 빨리 이유를 말해), 욕설을 하고 비웃고(네가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말을 회피하고(그냥 밥이나 먹어라)….
어린 시절 나는 깨나 모범생이었는데도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이런 것이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보편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욕먹으면서 배운다고 성인이 되면 이런 식으로 아랫사람을 대하기 일쑤다. 아이에게도 부하직원에게도.
나는 내 아이에게 이런 말투를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아이도 자신만의 생각과 개성이 있다. 아이는 기본적으로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아이를 대하는 것은 그 어떤 부하직원보다 힘든 상대를 마주하는 일이다. 아이는 그 어떤 거지발싸개 같은 부하직원보다도 화나게 만들고 머리를 아프게 한다. 아무리 거지 같은 직원도 잘리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며 자기 방어를 한다. 아이에게는 그런 동기가 없다.
이런 아이에게 소리 지르지 않고 때리지 않고 부드러운 말로 의사를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버지는 그 어떤 사람하고도 잘 지낼 수 있고, 그 어떤 부하직원도 잘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이를 대하는 일은 아버지에게 인간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성공의 기회도 제공해 준다.
좋은 아버지, 좋은 상사가 되는 비결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매 순간 올바른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좋은 아버지가 갖추어야 할 것은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자신의 상사가 내게 이렇게 대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아이에게 해줘 보자. 이런 태도를 지니면 아이와의 관계가 극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저절로 좋은 상사의 자질을 갖추어 가게 된다. 나는 다음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첫 번째는 주어를 ‘너’가 아니라 ‘나’로 한다. ‘나-전달법’이라는 것이다. 어른들의 강요나 지시, 비난, 심문, 무시 등은 모두 주어가 ‘너’라는 공통점이 있다. ‘너는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이다. 주어를 나로 바꾸면 상대의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부드러운 말로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
아버지의 독서를 방해하는 아이에게 “너 아버지 화 돋울래?”가 아니라 ‘네가 그런 일을 하면 아버지인 나는 화가 난다’고 말하는 것이 ‘나-전달법’이다. 이런 화법은 회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지각을 한 부하에게 “자네는 생각이 있나 없나?”라고 하는 것보다 “자네 때문에 내가 지금 무척 화가 나네”라고 하는 것이 좋은 말이다.
두 번째는 명령 대신 선택권을 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신입사원 시절, 회식을 마치고 노래방에 가는 것이 고역이었다. 상사가 “야, 노래 한 곡 뽑아 봐”라고 강요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집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딸아이가 새로운 노래를 익혔다고 말할 때, 나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그래, 그 노래 좀 불러 봐.”
아이가 새로운 것을 하나씩 익혀 가는 것은 아버지에게 큰 기쁨을 준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노래해 봐라’ ‘춤춰 봐라’, ‘글씨 써 봐라’라며 명령조의 말을 했다. 아이에게 결정권을 주는 말투를 사용하면 명령하지 않고도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새로운 노래 배웠다며? 아버지도 듣고 싶네. 네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새로운 춤을 배웠다며? 얼마나 잘 추는지 아버지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니?”
이런 말투는 아이의 자율성을 살려 주는 말이다. 혹시 아이가 거부하더라도 삐치지 말기 바란다. 아이도 노래하고 싶지 않을 때, 춤추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세 번째는 상대의 말을 논리가 아니라 감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의 본심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본심을 숨길 때가 많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자존심 때문에 마음을 숨기기도 하고, 야단을 맞을까 봐 돌려서 말하기도 한다. 아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의사소통에 장애가 올 수 있다.
아이가 “왜 공부를 잘해야 돼?”라고 묻는 말에 “그래야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장 들어가고” 같은 말은 논리적인 대답이다. 아이의 본심을 이해했다면 “요즘 공부하는 게 많이 힘들구나. 어떤 점이 가장 힘드니”라며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남자들은 감성적이기보다는 논리적이다. 그래서 “공부가 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에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 식으로 답하기 일쑤다. 리더가 되려면 감성회로를 발달시켜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마음을 읽기 위해 감성회로를 작동시키다 보면 사회 생활에 필요한 의사소통의 기술을 저절로 익히게 될 것이다.
서른 즈음에는 나이를 먹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젊음을 잃는 대신 그 대가로 얻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뒤로는 나이 드는 것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나이가 드는 만큼 인간적인 성숙이 쌓여 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는 것이 서글프고 억울했던 것은 그만큼의 성숙함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은 나이는 들어가는데 그만큼 성숙해지지 않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2010/02/01 17:51
2010/02/0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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